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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주저하느냐 심미화 2012-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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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22장(왜 주저하는냐)

바울의 다메섹 사건은 그의 인생을 AD에서 BC로 바꾸는 엄청난 전환점이 되어집니다.

성령의 사람 아나니아를 통하여 전해 듣는 이야기가 너의 조상 하나님이 너를 택하시고 음성을 들려주시고 만나 주시고 보고 들은것을, 증인으로 세워 이방인의 전도자로 삼기원하심이다. ‘주저하는자리에서 일어나 세례를 받고 죄씻음을 받고 주의 이름을 불러라’아나니아를 통하여 하나님은 바울에게 사명을 주십니다.사도행전1장8절의 말씀이 약속으로 성취되어지는 것입니다.약속이 성취되어지기까지그를 통하여 이방인의 전도자로 쓰시기 원하여

바울을 꼬구라뜨리고 다소7년,아라비아3년의 암흑기도 거치게 하시고 비로소 빈그릇이 준비되어질때 주님은 그를 사용하십니다.율법의 준행자요 예수믿는자를 결박하며 예수를 이단의 괴수요 유대교를 교란케 하는 자라고 누구보다 믿는자를 핍박하고 결박하며 살기등등했던자가 이제는 자신의 의지가아닌 성령의 사람이 되어 주저하는 가운데 주님은 다시한번 그를 일으키시고 ‘주저하지말고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증인의 삶’을 살아갈것을 간구합니다.

주저하는자들의 특징은 어떠합니까?

상황따라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움직이는자들입니다.

많은 무리들이 먹고 배부른 까닭에 주님을 따랐지만 주님의 죽음앞에 모두 흩어지고 떠날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주를 만난 증거가 있다면 어떤 환경앞에서도 흔들림이 없어야 합니다.

주저하다가 은혜의 때를 놓치고 사명도 축복도 기회도 놓쳐버리게 됩니다.

주저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신앙이 불확실하기때문입니다.구원도 은혜도 불확실하기때문입니다.

하나님보다 자신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음성보다 사단의 음성을 듣는것에 더 익숙하여진것이 우리의 타락한 본성입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이 하나님의형상으로 지음받고 에덴에서 생명나무를 따먹으며 그 안에서 안식세계가 열려지는 평강의 복을 받았습니다.그러나 말씀에 불순종하므로 에덴에서 쫒겨납니다.

쫒겨나 소망없는 삶을 사는 가운데, 소망의 메시지가 들려옵니다.여자의 후손이 올것에 대하여 약속을 해 주십니다.여자의 후손이 오면 복귀될것에 대한 소망이 있기에 자녀를 낳고 ‘여호와로 인하여 득남하였다’라는 너무 기뻐서 가인이라는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가인의 속성은 에덴동산에서 생명나무 과실을 따 먹던 타락하기이전의 자신들의 모습이아니라 악한 영이 역사하는 것을 보게됩니다. 그동생 아벨은 죄중에 태어나서 소망이 없다라는 뜻에서 그의 이름을 아벨이라 지었습니다.아벨의 이름은 인생은 공허한것 밖에 없구나 라는 뜻인데 결국은 가인의 악한속성이 시기와 질투와 분냄으로 아벨을 죽이는 자가되어집니다.

여자의 후손 그반열에 섰던 아벨이 죽자 아벨대신 셋을 주십니다.

셋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세상은 공허할수 밖에 없다 내게는 선한것이 없구나 깨어질것밖에 없고 악한것밖에 없구나 이것을 깨달은 셋은 자녀를 낳고 에노스라는 이름을 지었습니다.

에노스라는 이름을 짓고나서 부터 비로소 사람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세계가 열려집니다.

에노스가 주의 이름을 불렀던 것처럼 오늘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과정가운데 누구에게나 암흑기는 있습니다.

내 인생에 지워졌으면 좋을 상처와 아픔...그러나 그 상처와 아픔이 결국은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는 구원의 소리입니다.

다메섹에서 꼬꾸라짐을 당한 바울이 아나니아를 통하여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일으킴을 받았듯이 아브라함도,이삭도,모세도 다윗도...위기가운데 주의 이름을 부르며 주님앞에 쓰임받은 자들입니다.

구약의 예언이 신약에서 성취되어지므로 신약의 주인공들은 실제이신 주님을 만남으로 구원의 세계가 열려지는 축복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주의 이름에는 엄청난 권세가 있습니다.

모든 사건앞에 주의 이름을 부를 때에 주의 영이 나를 주관합니다.

예수의 능력으로 성령을 받은 아나니아는 자신에게 임하신 주의 영을 그대로 바울에게 전수합니다

신앙의 유산은 타락한 본성가지고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영을 전달하는 축복의 통로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이유는?

구원이 있습니다.기도할수 있습니다.주의 거룩함으로 덧입혀지고 주의 형상으로 채워집니다.....환란과 핍박과 고난가운데 구원의 요청으로 하나님과 연합되어그 현실을 이겨내는 자가 되어집니다.한계상황을 느낄때 이땅에서 살소망이 없는 것을 깨달을때 그때가 비로소 에노스의 세계가 열려집니다.

주님을 믿는것은 본능이나 의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안으로 옮겨지는 것이며 하나님의 형상을 지음받아 가는 것이 참된 신앙입니다.이런 믿음을 갖기원하여 본문가운데 아나니아는 바울에게 세례를 받고 주의 이름을 부르라고 합니다.

진정한세례는 옮겨지는 것입니다.자신을 끝내는 것입니다.

옛사람은 죽고 주의 영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아담의 피조된 죄의 속성에서 그리스도안으로 옮겨지는 것입니다. 바울에게 율법적인 기준과 주의이름을 부르는 자들을 핍박하던 것에서 돌이켜 부활의 영을 생명으로 취하여 그 영으로 더불어사는 자가 되기를 원하여 주의 이름을 부르고 세례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기까지 고난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고난이 결국은 내 본성이 꺽어지고 그리스도안으로 들어오는 과정입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세례받는것과 죄 씻음과 같은 의미입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면서 죄 씻음도 받고 세례도 받게 됩니다.

바울에게 씻겨질것은 자기기준의 믿음에서 예수믿는자를 핍박했다고 하는 그것이 결국은 예수가 나를 핍박했다고 말씀하시는 주님, 내 열심이 예수를 핍박했던 우매한자, 이것에서 돌이켜 하나님 께 구원으로 요청하는 이것이 바울 의 회개입니다

바울은 다메섹 체험을 기점으로 예수 만나기전과 예수만난 이후의 인생으로 옮겨지고 이름도 사울이 바울이되어 주의 인도함을 따라 움직이는 자가 되어졌습니다.

하나님의 택하신 사도가 되어져서 보고 들은 모든 것의 증인되어 지는 삶을 살았습니다.

바울의 지금상황은 자기를 죽이려는 유대교 인들앞에서 자기가 만난 예수를 증거하지 않을수 없기에 눈물로 고백하며 호소합니다.우리 인생을 주께 드려 천하보다 귀한 영혼을 살리는데 열심을 다하는 바울과 같은 전도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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