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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사에 양심에 따라” 김경화 2012-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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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22:30~23:2

오늘 본문의 바울은 “범사에 양심에 따라” 하나님을 섬겼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창조하시고 생기체를 불어넣으시고 영이시기 때문에 아담을 통하여서 타나시기를 원하셨던 것처럼 우리를 부르셔서 주님의 자녀 삼으신 것도 우리를 통하여서 주님이 나타나시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아담이 임재와 누림으로 안식의 세계에서 생명나무를 먹고 영원히 영적 존재로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드셨는데 말씀에 불순종하여 먹지 말아야할 선악과를 먹음으로 타락으로 떨어졌습니다.

사단의 영이 주입이 되어져서 영원히 죽음의 길로 들어가지 않게 하시려고 남자에게는 종신토록 땀 흘려 일해도 간신히 먹을 소산만 있도록, 여자에게는 남자의 다스림 아래 해산의 고통으로 저주를 하셨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고난과 고통을 받는데 그 저주는 결국 육이 끝나기 전에 창조주를 기억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사랑입니다.

아담에게 가죽옷을 입힌 신 것은 신앙의 양심이 회복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타락한 죄 된 속성대로 살지 말고 예배의 단에 회개의 제물로 드리고 주님 오시기를 사모하는 예배자가 되기 원하셔서 그에게 양심을 책임지길 원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양심껏 살기 위해서 자녀를 양육했지만 자녀들은 양심을 지키지 못하고 타락이 되어져 실패함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신 것은 영광을 들어내기 위해 지음을 받았는데 사람의 마음에 생각 모든 것이 악한 것 밖에 없어서 홍수로 심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홍수 심판 이후에는 노아의 허물을 보고 세명의 아들에게 영적 축복받은 셈, 육적 축복 받은 야벳, 형제의 종의 종이 되는 함의 족속이 나와서 인간 자체에서 통치하는 세계를 열어놓으셨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게서도 또 실패를 하셨습니다.

실패를 하고 나니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셨습니다. 율법아래 참으로 곤고하고 선한 것이 없기에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함을 알게 하시고 두 손 들고 나오기를 원하셔서 율법을 주셨습니다.

율법을 주시면서 죄인 것을 알게 하는 자들에게 성막제도를 주셨는데 하나님 뜻대로 가지 아니하고 율법을 지키면서 잘 살고 있다고 율법으로 가며 자기를 세우는 타락으로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하면서 피조된 족속들이 계속 실패를 하게 되었는데 오늘 바울이 감히 “나는 범사에 양심에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간증을 할 수 있는 것은 더 이상은 피조된 족속으로 오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전환되었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율법 준행자들은 이러한 행위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다윗이 제단위에 올려진 전설병을 제사장만 먹을 수 있는 것을 먹어도 죽지 아나하고, 예수님이 안식일에 밀밭사이에서 제자들과 밀을 꺾어 먹었어도, 다니엘이 사자굴속에서도 죽임을 당하지 아니한 것도, 바울이 독사에 물렸는데 죽지 아니 한것은 성령으로 그 안에 채워졌기 때문에 더 이상은 내가 아니요 그리스도란 고백으로 그 중심 가운데 역사하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 땅 모든 것을 지으시고 피조물을 다스리시기 때문에 그릇은 다윗이고, 다니엘이고, 바울이었지만 그 안에는 하나님의 임재로 채워진 그릇으로 움직이니까 안식일의 주인이시고 성전의 주인 된 그분이 전설병을 먹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림과 통치권 아래 있는 사람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던 상함과 해함을 받지 아니한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고난 속에 있었지만 바울은 이미 죽은 자이고 예수 안에서 부활한 자였기에 어떠한 사항이 우겨 쌈을 당해도 해함을 받지 아나하고 오직 관심이 예수뿐이었습니다.

이런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 자는 하나님을 만나자 여야하고 천국을 본 자만이 감당 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이 말씀을 허락하신 것은 우리의 믿음도 바울의 고백처럼 되게 하는 경지까지 이끌어 내시기 위하여서 오늘 이 길을 우리에게 열어주셨습니다.

이 땅은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 양심을 버릴 수밖에 없는 세대인데 우리는 이 세대에서 건짐을 받아 하나님을 만나 양심을 지으신 하나님 앞에 통회하며 자백하며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을 하게하심에 신앙 양심에 지배를 받아서 하나님에 자녀답게 살아가는 축복을 받은 바울이 계속 양심에 따라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 나름대로 율법을 준행한다고 주일성수하고 십일조 드렸다고 잘 믿는다고 착각하는 우리들에게 바울을 꼬꾸러뜨리신 것처럼 나에게 임하셔서 더 이상은 내가 아니요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증거 하시기 원하셔서, 내 안에서 예수 나타나시기를 원하시는 사명이 우리에게 있기에 생존 세계에 머물게 하셨습니다.

이 땅의 예수님의 전 사역은 성령의 사역이셨습니다. 성령으로 잉태하시고, 성령으로 세례 받으시고 성령에 이끌리어 마귀의 시험도 받으시고, 성령의 이름으로 힘입어 마귀도 쫒아내시고 병도 고치시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성령이 거하는 너희는 성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에게 성령이 임하신 것처럼 오늘 우리를 인치시고 불러주셔서 말씀으로 찾아오셔서 말씀 듣는 중에 회개가 터지게 하시고 살려 달라고 기도하는 우리 심령가운데 성령이 임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바울에게 창조의 영이 임하시니 지혜의 말씀으로 나타나시고, 지식의 말씀으로 나타나신 것처럼 우리도 2천년전 예수를 만나보지 못했지만 예수를 이 땅에 보내신 신성의 영이 말씀으로 임하시니 예수님이 이 땅에서 행하신 모든 일들이 우리의 피부에 와 닿아지고 함께 고난에 동참하고 함께 고난을 채율 하면서 함께 부활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이 축복이 영의 세계에서 일어나게 됩니다.

오늘 성전에는 동일하게 예수 믿는 것 같지만 육체의 소유를 따라 쫒아가는 육체의 사람이 있고, 성령을 따라 쫒아가는 성령의 사람이 있는데 임재가운데 그분이 주시는 지혜와지식이 열려지는 세계 안에 있다면 갈 길을 알지 못하고 혼돈된 자리에 있는 영혼을 내가 하는 것이 아니고, 그분이 감동을 주시고 해야 될 것을 알게 해주시고, 병 고치는 역사가 일어나게 해주시고 예언 ,능력, 영분별, 방언, 통역의 역사가 성령 받는 자에게 나타나는 역사인데 이런 역사가 우리에게 나타나지 않는다면 성령받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심령가운데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길 간절히 원합니다.

베냐민지파요 유대인 중에서 바리새인이요 배경에 자부심을 가졌던 바울이 결국 예수님을 만나고 나니 허상인 썩어질 것 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모든 것을 내려놓았습니다.

자기와 같은 동족에게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복음을 전하는 주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이전에 없었던 사랑이 나오기 시작하고 희락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희락의 세계가 열려지니 고난도, 아픔도 함께할 수 있고 위로하고 안위하는 자가되어지는 하늘의 마음이 와 있으니 성령의 열매들이 맺혀지며 어떠한 경우에도 둘레지 아나하는 화목, 화평의 역사, 안식의 역사, 오래 참을 수 있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주님은 어떠한 경우에도 참으셨지 내가 죽고 죽어 저 영혼 구원 할 수 있는 역사만 일어난다면 감당하며 오래 참음의 주의 영이 임하니 자비합니다, 양선합니다, 죽도록 충성합니다,온유합니다,절재합니다.하늘의 법이 바울을 주관하니 세상도 감당치 못할 믿음의 소유자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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