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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에 순종하는 자 김경화 2012-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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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23:1~11(2011.02.19말씀)

오늘 사도 바울은 산헤드린공회 법정 앞에 서서 양심에 따라 하나님을 섬겼다고 신앙의 양심을 선언하자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양심에 찔림을 받고 ”그 입을 치라“ 명합니다.

에덴동산에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타락으로 에덴동산에서 쫒겨남으로 만물보다 부패된 것이 마음이기 때문에 그 마음에서 일어나는 생각과 감정과 의지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역사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를 믿어 구원받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아직 미완성의 존재이기에 날마다 말씀을 통하여 거룩을 입어가는 과정이기에 누구도 이 땅에서 온전히 다 이루었다고 할 자가 없습니다.

바울이 율법을 준행하면서 스스로 하나님 뜻대로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을 만남으로 하나님의 대적자리에 있었던 자가 자신이 만난 예수를 부인 할 수 없기에 법정 앞에서 신앙의 양심인 체험신앙을 선언하게 됨으로 하나님을 증언하는 역사를 하게 됩니다. 증언은 그 사간을 목격한 자가 목격에 따라서 증언하게 됩니다.

눅1:1에서도 증언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구속의 제물로 오셨기에 돌을 던지고 죽이려는 사람 앞에서 잠잠하셨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복음을 증거하기 위한 주님의 파수꾼으로 세움을 받았기에 내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내 동족 유대인들이 구원받길 원함에 마지막 기회이기에 말 한마디 한마디의 진리로 영혼이 살아나 구원받아 주님께 돌아오길 원하는 마음 오직 예수밖에 없었습니다.

바울의 양심선언은 동족 유대인을 살리기 위한 것이었는데 영향을 끼치지 못하게 되자 철저한 율법과 기도생활에 전무하고 있는 바리새인들과 부활이 없고, 천사도 없다고 하는 사두개인에게 진리를 선포합니다.

“나는 바리새인이요 바리새인의 아들이라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을 인하여 내가 심문을 받노라 “말하는 바울을 두고 이들 사이에 다툼이 일어났는데 결국 이것은 구원을 이루기 위한 또 다른 하나님의 방법이 적용됩니다.

오늘 우리가 일류 역사상 양심이라는 선언아래 왔지만 이 타락한 양심은 아무리 선하고 옳다고 할지라도 구원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바울이 아나니아를 ”회칠한 담“이라고 심령상태를 정확히 지적함을 듣고 바울 곁에 섰던 사람이 대제사장임을 알려줍니다.

대제사장이 불법을 행하고 율법을 어기며 행악을 행하고 있었지만 대제사장 말 앞에 권위에 순종을 합니다.

출22:28인용하면서 주께서 주신 권위를 무시하지 않고 방법을 바꾸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체계도 바꾸고 권위도 무시하는 현실입니다.

예수님도 잘못된 권위주의 자들에게 희생당하고, 핍박받고, 심판받고 사형을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구원의 성취를 위하여 권위에 도전하지 아니하시고 입을 열지 아니 하셨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배워야 할 것은 권위와 권세는 위에서 주시기 때문에 우리의 기준에서 자격을 가지고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세우셨기에 권위에 순종 할 줄 아는 것을 말씀 중에 받아야 합니다.

한나와 엘리제사장을(삼상1:12~18) 통하여 권위에 순종함이 하늘의 복임을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보게 되며 또한 우리에게는 그 길 가지 아니하도록 경계를 세우셨습니다.

자신의 기도소리를 듣고 술주정한다고 말했을지라도 그 입을 통하여서 나오는 소리를 하늘의 소리로 듣고 기도하며 이루어 질것을 믿었기에 사무엘이 탄생되었습니다.

사단은 유대종교인을 부축이고, 이방인의 정치인을 부축이며 복음 사역을 결박하지만 그리스도의 증인 예수의 흔적을 갖고 있는 바울을 결박 할 수는 없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 만난 체험이길 원합니다. 경건하고 의로워서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찾아와 주셔서 있는 것처럼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를 만나기 위해서 말씀으로 찾아와 주셔서 구원의 세계를 열고 호소하고 계십니다.

바울은 예수 때문에 결박당하고, 감옥에 갖히고, 돌에 맞은 바울을 당신의 이방인의 증인으로 삼으셔서 바울은 지금 어느 자리에 와 있습니까? 예수님을 밤새 심문하며, 채찍질 하며, 가시면류관을 씌우며, 홍포를 벗기면서 조롱을 당했던 산헤드린공회 앞에 바울이 서 있습니다. 아무도 바울편이 없었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예수가 당했던 그 자리에 서있는 바울을 바라볼 때 하나님은 바울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중하겠습니까?

진정 우리가 예수 믿는 사람입니까? 진정 예수님이 우리를 바라보실 때 어디서 무엇을 하던지 진리 편에 서서 예수를 나타내고 증거 한다면 우리를 보실 때 얼마나 귀하겠습니까?

오늘 우리는 예배 전에 하나님을 만날만한 주인공 되게 하시기 위하여서 우리의 심령을 예수의 피로 정결하게 하고 주님의 말씀을 담을만한 그릇을 준비하고 회개하고 자복하는 기도 시간을 갖습니다.

우리는 여기에 어떤 모양으로 와있습니까?

성전 뜰만 받고 가는 심령입니까?

아니면 성전의 기둥이 되어서 하나님 나라가 임하여 지길 원하여 예수 때문에 핍박 받는 받는 것을 인생의 가장 귀한 가치로 알고 주의 영광으로 안고 가고 있습니까?

“그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자신만 고통당한 것 같은데 주님이 함께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바울의 고난에 하나님이 함께 고난 받으셨고, 핍박을 당하셨고, 조롱을 당하시면서 죽음의 고비를 넘길 때마다 하나님이 그 곁에 서계셨다는 다는 말씀에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믿음의 길을 가면서 임마누엘의 하나님 무엇을 하던 내 옆에 계셔서 응원해주시고 함께 고난을 받으시고 함께하시는 하나님!

죽어서 저 천국에 가서 만날 볼 수 있는 하나님이 아니라 이 땅에 생존하시며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될 수 있는 믿음의 경지까지 갈수 있도록 기도하는 우리기 되길 원합니다.

유대인들이 말씀을 받지 않았고, 공회 앞에서 심적으로 위축되고 바울은 힘들었을 때 찾아오셔서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리라” 하신 말씀에 죽지 않을 것을 알았습니다.

아직도 사명이 있어 땅 끝까지 가서 재판을 받으며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고 내가 어떠한 환경가운데서도 나와 함께하신다는 것을 위로하셔서 바울에게 힘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만세전에 주님이 택하시고, 인치시고, 사람을 통하여서 만나주심은 구원의 자격을 입히시고 계십니다.

우리는 천국을 사모한 적도 없었는데 말씀으로 날마다 찾아오셔서 구원을 이루어 가고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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