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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성취를 위하여 권위에 순종하다 구인희 2012-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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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칠한 담이여’영적인 실체를 지적하다 >

사도바울이 나는 신앙양심을 따라서 하나님을 섬겼노라고 담대하게 이야기 할수있었던것은 이제는 더 이상 타락한 본성이 아닌 하나님의 사람으로 전환되어진, 이제는 내 안에 내가 나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나를 주장하시고 움직여주시는 확실한 담대함으로 선언이 되어지는 줄 믿습니다.

바울이 깨지고 나니까 지금까지 예수 믿었던 방향이 틀려졌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만났고 내가 목격한자가 되었고, 내가 체험한자가 되었고 내안에 성령이 역사하시는 것을 예수가 메시야라는 것을 나를 아무리 죽이고 힘들게 한다 할지라도 그 핍박때문에 내가 정험한 예수를 부인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증언의 삶을 살아가는 바울인데 가는곳 마다 해방을 받고 대적자가 나타나게 되어지고 이제 최고의 유대인의 법정인 의결기관 산헤드린 공회앞에 오게 되어지니까 신앙양심선언을 하는 것입니다.‘내가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라는 양심선언에 그 양심에 찔림을 받은 제사장 아나니아가 입을 치라하니까 ‘율법대로 판단한다고 앉아서 율법을 어기고 나를 치라하느냐 하나님이 너를 치실것이다 회칠한 담이여’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 예수님과 달랐던 바울의 사명 >

오늘 우리가 볼때에 예수님은 이땅에 오셔가지고 입을 열지 않았는데, 당신을 불의한 재판을 하게 하고 밤새 심문을 하고 괴롭혀도 대항하지 않으셨는데 라고 생각할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땅에 오셔서 대속의 죄물로 오셨기 때문에 죽으시려 오셨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돌로 칠때마다 저 죄인 때문에 내가 죽으러 왔기 때문에 구속의 죄물로 들어가시기 원하셔서 잠잠하셨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복음을 증거하기 위한 주님의 파수꾼으로 세움을 받았습니다. 지금 내가 법정에 들어가게 되어지고 사형을 당하게 되어지고 다른데로 이송이 되어진다고 그러면 내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내 동족 유대인이 구원받기를 그리도 원하는데 지금이 마지막기회인데 내가 지금 쇠사슬에 묻히고 내 몸은 돌에 던짐을 받아서 피투성이가 됬다 할지라도 지금 이 말하디로 저 영혼이 살아날수있다면 내 말한마디의 진리의 선포로 주께로 구원 받을수가 있다면.. 오직 바울의 목적은 이것이였습니다.

바울의 일생의 삶의 주제는 오직 예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를 만나기 전에는 그가 누구보다 크는 것이 주제였고 잘되는 것, 이생의 성공하는 것이 주제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만나고 난후 사나죽으나 예수 증거하는것 구원을 외치는 구령의 전도자밖에 관심이 없습니다. 내가 먹고 사는 것도 예수를 위하여 사는 것이고 천하보다 더귀한 영혼하나 구원하는 것, 그 영혼을 영생에 이끌어 가는 것이 내 인생에 가장 가치있는 일이라는 것을 예수를 만난 바울은 체율을 했습니다. 이래서 그가 환경에 우겨쌈을 당해도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예수만 증거하는 것입니다.

< 불법을 행하는 권위주의자일지라도 그 권위에 순복하다 >

바울이 입을 치라하는 아나니아를 향하여 회칠한 담이라고 그 심령을 정확하게 영적으로 판단을 하면서 하나님이 네 입을 칠것이라는 얘기를 할때에 그 곁에 섰던 사람들이 ‘대제사장을 네가 욕하느냐’라고 합니다. 그 말앞에 바울이 그 권위에 순종하면서 ‘나는 대제사장인줄 몰랐다 너희 백성의 관원을 비방치 말라 하였느니라’ 출애굽기 22장 28절의 말씀을 인용하여‘내가 지금 주께서 주신 권위를 무시하지 않는다’라고 하며 방법을 바꾸는 모습을 봅니다. 오늘 우리들은 부당한 대우를 받고 억울한 일을 당하게 되어지면 체제도 무시하고 권위도 무시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잘못된 권위주의자는 자기는 그렇게 행치 아니하면서 권위만 내세우는 것이 권위주의자입니다. 권위주의자는 권위를 주신것 답게 행동할수있는 자가 되어야 될줄 믿습니다.

예수님도 잘못된 권위주의자에 의해서 남용을 당했고 그들을 통해서 희생을 당했고 핍박을 받았고 밤이 맞도록 심문도 받았고 불법재판에 의해서 사형도 당하셨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 주님은 구원의 성취를 위해서 권위에 도전하지 아니하였고 입을 열지 아니하였습니다. 로마정치와 종교지도자들에게 도전하지 않았습니다. 불의한 내용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고 동의하지 않았지만 주님은 재판자체를 거부하거나 권위에 도전하지 않았습니다.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분명히 대제사장이라는 아나니아는 불법을 행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가 대제사장이라는 것을 알고 권위에 순종하게 되어지면서 더 이상은 자기의 양심선언이 그들에게 영향을 끼치지 아니하고 복음이 증거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방향을 바꿔 구성원의 속성을 보면서 진리를 선포하는 자리에 들어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배워야 될것은 권세와 권위는 위에서 주시기 때문에 우리의 기준에서 자격이 있니 없니 우리가 평가해서 그 권위를 인정해주고 체제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세우셨기 때문에 불법을 행하는 아나니아지만은 그 권위에 순종하여 방향을 바꾸듯이 오늘 우리도 권위에 순종할줄 아는,, 아무리 잘못된 권위일지라도 하나님이 주시는 권위이기 때문에 권위를 무시하거나 허물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씀중에 받아야 될줄 믿습니다.

< 진리 선포로 구원의 방법을 바꾸다 >

바울의 양심선언이 동족을 살리는 양심선언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그 영혼을 위하여 양심선언을 했는데 유대인들에게는 영향을 끼치지 못했습니다. 그 다음 방향을 바꿉니다. 공회원의 구성원을 보니까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로 구성원이 되어져 있는데 사두개인들은 오늘날로 말하면 현대주의자고 자유주의자로서 부활도 없고 천사도 영도 없다고 믿는 사람이고 바리새인들은 그들의 철저한 성결생활과 율법준수와 기도생활을 통하여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보려고 애를 쓰는 자신만이 정당성을 가진 유대종파라는 당파입니다. 이들은 부활도 믿고 천사도 믿고 영을 믿습니다. 양심선언을 해서 구원이 이루어지지 않으니까 이제 당회원에게 진리를 선포하게 됩니다. ‘나는 바리새인이고 바리새인의 아들이다. 나는 지금 바리새인으로서 부활을 증거하다가 심문을 받노라’

바리새인이 생각할때는 우리는 내세가 있고 부활이 있는데 부활 때문에 저 바리새인인 바울을 심문한다는 건가 그러면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간에 진리의 오류가 생겨 분쟁이 일어나게 되고 공회가 나눠지면서 힘을 잃을수 있게끔 하나님께서 안배하시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싸움을 붙인것 같지만 거기서 다시 한번 구원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 바울을 통하여서 적용이 되어졌습니다.

< 바울의 영혼 구원의 역사가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도록 >

바울이 양심선언을 했다가 진리를 선포하게 되어지면서 호소를 하게 되어집니다. 자기 동족이 예수믿고 구원받는 것을 내가 그리스도에게 끊어질지라도 돌아오기를 원했다는 말은 얼마나 구원이 귀중하면 자기 생명을 걸고 동족이 구원받기를 원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성령의 역사가 우리에게도 있어서 믿지 않는 혈통가운데 무릎을 꿇어서라도 눈물로 통곡을 해서라도 내 주변사람과 혈통들에게 복음을 증거할수 있는 믿음의 소유자가 되려면 내가 먼저 구원이 깨져야 되고, 내가 예수만나 꼬꾸라지고 예수만나 생명을 취하고 예수만나 구원의 역사에 참여한 주인공이 되어진 증언이 있어야 되겠는데 그런 간증거리가 없는 성전뜰만 밟고 가는 죽어있는 영혼 되지 말고 말씀말씀에서 하나님이 나를 찾아와 주셔서 나를 부르실때에 반응을 보일줄 아는 우리들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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