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첨과 칭찬 | 구인희 | 2012-03-1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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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하셨던 말씀대로 예루살렘에서 가이사랴로 많은 호위병을 둘러 진쳐 주셔서 안전하게 이송이 되어졌습니다. 이송한지 닷새만에 그를 고발한 대제사장 아나니아와 장로들, 변사 더둘로를 대동하고 총독 앞에 바울을 고소하기 위해 섰습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알게 모르게 고소를 당하고 살아갑니다. 고소내용이 너무나 억울해도 바울처럼 잠잠히 들어야 될 필요가 있을 때가 있고 이런 과정을 겪고 나면 내가 말하고 변론 할수있는 기회가 주어질때가 있습니다. 바울의 고소내용은 나사렛 이단의 계수로서 천하의 흩어져있는 유대인을 소요케하고 성전을 모독했다는 죄목을 씌워서 바울을 죽이기 위해 변사 더둘로도 매수해 총독앞에 나옵니다.
성도는 아첨의 혀를 분별할줄 알아야 됩니다. 이 벨릭스는 로마의 정책의 대해서 적대감을 갔고 있는 유대인들이 발란을 일으킬때에 강제로 진압을 해서 많은 사람들을 희생케 하고 이때 제사장이였던 요나단이 죽임을 당하는. 그리하여 실제로 벨릭스가 죽었을때는 그의 죽음을 기뻐했던 유대인들이라면 벨릭스가 총독으로 있을때에 유대인들이 받은 고난, 압박, 폭군으로 당한 어려움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유대인의 변호사였던 더둘로가 당신을 힘입어 태평을 누린다는 아첨을 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이 당신의 선견을 인하여 여러 가지로 개량 되었다라고 합니다. 유대민족은 아브라함 이후로부터 하나님의 선민으로써 그들에게 주신 율법을 준수하면서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의 생활가운데 있었습니다. 주님 뜻대로 살려했던 유대인들에게 벨렉스의 선견으로 유대인들이 개량됬다고 하는 아첨은 유대인들의 신앙근간을 뒤집는 거짓말이였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크게 하나 작게 하나 아첨하는 혀가 있습니다. 왜? 이미지 관리를 위하여, 내유익을 얻기 위하여, 나의 뜻이 이루어지기 원하여 아첨하는 더둘로의 속성이 우리안에 있습니다.
칭찬은 나보다 못한 사람에게 할수있는 멋진말입니다. 그런데 아첨은 나보다 힘이 있는 자에게 나의 유익을 위하여 비굴하게 하는 말입니다. 칭찬은 상대방에게 힘이 되어주지만 칭찬을 하면서도 대가를 바라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첨은 상대방을 넘어뜨리면서 대가를 바라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시편 11편 3절을 통하여 비판보다는 격려하고 칭찬하는 것을 좋아하시지만은 아첨하는 혀는 끊으실것을 말씀해주셨습니다.
유대인들이 무슨 죄목으로 바울을 고소했습니까? 염병에 걸려 유대인을 소요케 한자라고 합니다. 우리들의 영이 잠들면 어디를 가든지 조용합니다. 그런데 영이 살아있으면 기뻐뛰게 됩니다. 전하지 말래도 복음 전하게 되고 찾아가게 되고 기도하게 되고 찬양하게 되고 요란이 일어나게 되고 소동이 일어나게 됩니다. 내가 만난 예수 증거하고 싶고 자랑하고 싶고 보여주고 싶어 참지를 못하는 것이 영적인 염병 입니다. 내가 만난 예수님을 전염시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천하에 안미치는 곳이 없이 복음의 발, 아름다운 발걸음이 되어져서 흑암가운데 있는 자들을 일으키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조용한자 얌전한 자가 아니라 소요케 하는자, 염병걸린자 이런 소리를 들을수있을만한 복음의 파수꾼이 되어지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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