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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생명 구인희 2012-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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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서 세 종류의 사람, 세 종류의 상황에 놓여있는 유대 종교인들, 로마 정치인, 바울의 인물들을 봅니다.


첫 번째 사람, 유대 종교인들
을 바라보면 그들은 믿음을 따라 이루어진 족속으로 말씀을 따라 형성이 되어졌습니다. 그들이 갖고 있는 것은 거룩한 성전, 거룩한 성지, 거룩한 성경, 거룩한 성의를 입고 있습니다.

이 기타 거룩한 행위가 있음으로 말미암아 자기들은 가장 선하고 하나님의 인침받은 선택받은 믿음의 사람들이라고 자긍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사도행전에서 나오는 유대종교지도자들이 행했던 것을 제 3자 입장에서 우리가 바라볼때에 하나님께 속한 것이 없는 것을 우리가 봅니다. 2년 전에 바울을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고 고소했던 자들이 총독이 바뀌니까 또 다시 고소를 하면서 매복해서 죽이겠다는 계획을 세우는 것입니다.

이것이 누구입니까? 유대종교인들이라는 것입니다. 온갖 거룩한 것은 다 가지고 있는데 실상은 없이 외식하는 자이고 그들의 심령가운데에서는 악한 영이 그들을 지배하고 있어서 자기 뜻과 맞지 아니하니까 사람 하나를 죽이기 위해 먹지도 마시자도 아니하는 누구를 미워하는 기준을 2년이 지나도록 매복하고 있습니다.

의로운것, 거룩한 것, 하나님을 위한다는 것이나 영적인 것이나 신령한것이 전혀 없습니다. 육적이고 마귀적이고 그들에게 속한 것은 그들의 근원은 마귀인것을 우리는 보나 그들은 모릅니다.

이 유대 종교인들을 보면서 우리를 봅니다.

우리는 세상과 구별되어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진 예수의 피값으로 사신바된 구원받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성전의 주인들이 되어져서 성전의 예배자가 되어졌습니다. 우리에게는 성경이 있고 예배가 있고 기도가 있고 말씀이 있고 거룩한 직분을 가지고 성의를 입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한번 내 마음에 내 기준에 틀려서 상처받으면 예수를 믿어도 절대로 용서하지 못하는 한번 사람을 내 기준에서 판단하면 절대로 내가 판단한 것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매복한 자가 있습니다.

유대 종교인들의 근원이 마귀인것을 그들이 모르듯이 우리가 육에 잡히면 하나님이 알고 모든 형제가 아는 내안의 악을 나만 모르고 의로운척 거룩한 척 끝까지 고집피우고 나가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이 거짓과 외식으로 회칠하고 있는 유대 종교인들, 오늘날 우리의 모습입니다.


두 번째 사람, 로마정치인
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에 제사장나라로 세운 민족을 다스리는 로마 정치인, 천부장부터 시작을 해서 벨릭스 총독이 나오고 교체가 되어 베스도 총독, 이어서 아그립바왕이 나오면서 사도행전을 마감 짖습니다. 로마정치인의 지위가 높아가면 높아갈수록 세상의 악하고 음란하고 거짓되고 부패된것이 가득한것을 봅니다. 드루실라라는 다른 남자의 여자를 취했고 바울을 불러다가 말씀은 듣지만 말씀을 들으면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거듭나고 구원의 세계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자가 되기를 소망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듣는 목적이 돈을 받을까 싶어서 이였습니다.

권력, 명예, 성공이라면 예수팔고 진리 팔고 배반해도 나의 영광을 위하여 갈수있는 부패된 모습들을 봅니다.

오늘날 성도들을 돈으로 보는 거짓 삯군들은 아닌것을 알면서도 성도들의 악을 절대로 건드리지 못하고 회를 칠해주고 비석을 꾸며줍니다. 성도들은 비석꾸미고 회칠하는 재료를 받으면서 그것으로 꾸며 거룩한 척 의로운척하는 것에 급급해 신앙생활을 몇십년을 한다 할지라도 변화되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가 말씀듣는 위치에 있으면서 말씀을 듣는것이 내가 변화를 받아 잃어버린 에덴동산에 복귀할수있는 주님의 형상을 입는 것에 목적이 있고 그곳에 소원을 두어야 되는데 그것과는 상관없이 없어질 세상것에 취해 내가 예배자가 되어지고 헌금을 드리고 충성을 하면 이땅의 것을 채워주실것 같은 주식투자 하듯이 예수믿는 상거래 조건부 신앙생활. 오늘 말씀을 들으러 왔으면서도 선심쓰듯이 하나님앞에 예배를 드려줬다는 사상. 이것이 벨릭스 총독의 속성, 오늘날 우리들의 속성입니다.


세번째 사람, 바울
을 봅니다.

예수가 죽었다가 살아났다는 것을 증거하는 바울을 죽이려는 반대파가 있는가 하면 심문하는 과정에서라도 부활에 대한 복음을 받았는데 이것을 너무 사소하게 생각하고 지나쳐 버리는 베스도 총독이 있는가 하면 바울과 같이 죽은자가 살아난것에 대한 부활의 생명을 받은자가 되어져서 복음을 생명으로 여기면서 자기 생명을 걸고 부활을 전하는 이런자가 있는것입니다.


부활의 생명에는
기다림의 영성이 있습니다.

2년의 구류 끝에 유죄도 무죄도 아닌 상태에서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부활의 능력을 받은 바울은 성공적인 비전을 보고 참고 기다리는 것, 좋은 열매를 보고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환란중에 참고 견디는 것입니다. 부활의 능력으로 오면 영생이 되어진사람은 고난을 참고 인내할줄 압니다. 죽어줄줄 압니다. 잠잠하게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줄 압니다. 거짓증언을 하면서 거짓제목으로 올무를 씌워 고소를 하면서 힘들게 했던 그들에게 감정적으로 분노로 대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수십년 예수믿는 사람이 되어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고 기도하면서 주님뜻대로 살려고 애쓰지만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세우신 천하에 귀한 영혼하나도 사랑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나를 미워하고 저주하는 그릇을 쓰시고 오셔서 나에게 막대기로 나를 단련시키시고 나를 낮추시는 과정인데 나의 영적눈이 어두워 막혔기 때문에 상대가 나에게는 원수지 예수님으로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부활의 생명에는 사랑의 영성도 있습니다. 자기를 비방하고 정죄하고 동족이 모반하는데 분노로 육의 혈기로 대응하지 않습니다. 육이 당해야될 미움과 저주와 핍박은 이미 죽은 자였던, 주님의 사랑으로 부활의 생명을 받은자는 주님의 영이 오셔서 나를 통하여 역사하시니까 원수도 사랑할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바울과 같은 부활의 신앙을 체험해야 될 것인가?

죽음이 끝이 아니고 다시 살아나는 생명인데 어떻게 이것을 체험해야 될것인가?

골로새서 2장 12절에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바 되고 죽은자들 가운데서 그분을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지만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불로 세례를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물로 세례를 준 상징은 내가 죽고 주님이 살아난다는 의식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부활의 말씀을 영으로 받아들이면 성령도 임하여 주시어서 나를 부인하게 하시고 절제하게 하시고 의에대한 소망을 갖게 하시면서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어져 가는 성령세례를 받을수 있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줄 믿습니다.

세례는 장사를 지내는 것이고 나를 끊어내는 것입니다. 내안의 내 본성이 너무나 분유하게 일어나서 부활의 생명이 부활의 능력이 내안에서 역사하지 못할때마다 “하나님 나도 사도바울과 같이 육신을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살아갈수 있는 영생얻은자의 생활이 될수있도록 하나님 나도 말씀을 듣는중에 성령이 내게 임하여 주셔서 성령세례로 내가 죽은자가 되게 도와주시고 내안에서 주님이 나타나심이 역사하실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라는 기도를 드릴줄 아는 우리되기를 원합니다.

사순절을 통하여서 나를 십자가에 못박는 절기를 보냄으로 부활절 절기가 형식이 되지 말고 내안에서 새롭고 산길로 부활의 생명으로 살아갈수 있는 자가 되어 사망에 속한 것이 깨뜨려 지고 무덤문이 열리는 역사가 우리들에게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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