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섬기는자, 자기뜻을 섬기는자 | 구인희 | 2012-04-0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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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 나오는 유대종교자들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을 섬기는 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섬기는 자가 하나님 섬기는 일에는 열심내지 아니하고 자기뜻 자기목적 달성하기 위해서 사악한 열심을 내는데 열심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마음을 다해야 되는데 우리는 왜 이렇게 우리의 목적 우리의 뜻을 이루지 못해 안간힘을 쓰는지. 왜 그렇게 열심은 열심인데 사악한 열심인지. 자기욕심에 열심을 내고 자기생각에 열심을 내고 자기 방식에 열심을 내는지. 그래서 우리에게 어떠한 상황을 놓으시고 우리안의 것이 다 들어나게 하십니다. 주의 영이 임해 우리들의 심령가운데 가증한것을 보고 우리들이 그 헌옷을 벗을줄 알때에 주의 보혈로 씻김을 받고, 벗고 시인할 때 하나님이 하늘의 의로운 옷을 입혀주시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자기 허물을 들킬까봐 무화과 나뭇잎을 엮어 감추기 위해 합리화하고 변명하느라고 바쁩니다. 우리에게도 속히 눈이 열려 이 부정하고 부패한 옷을 벗지 아니하면 하늘의 신령한 옷을 절대로 입을수 없다는 것을 알아 옳은 행실이 무엇인지를 말씀에서 보는 눈이 열리기를 원하고 들을수 있는 귀가 열리기를 원합니다. 내 옷이, 말과 행동이 내 마음속에 있는 생각들이 얼마나 주님을 대적하고 더럽고 추악한 것인지 몰라서 못벗는 것입니다. 내 말한마디가 하늘에 속한것이 아니고 썩어질 욕심과 탐욕과 시기와 음란 이런것에서 나온다는 것을 안다면 주님의 제단앞에 각을 떠가지고 재물로 돌려드리기를 원하고 회개하는 심령이 돼서 주의 영으로 새롭게 담을 수 있는 빈그릇이 되어지는 역사가 일어나길 원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잘 섬겨야 될 사람이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고 끊임없이 자기 뜻 자기 목적달성하기 위해서 사악한 열심을 내는 것을 본문에서 유대인들을 통해서 봅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들이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날마다 우리의 마음을 비우고 말씀에 자신을 비추어 봐서 성찰을 함으로 욕심으로 인해서 영분별을 잃어버리는 자가 되지 아니하도록 애쓰는 우리가 되어야 될줄 믿습니다. 베스도가 바울을 재판하는 데 고민에 빠졌습니다. 바울을 송사해 증거할 실제가 없는 것입니다. 풀어주자니 유대인들을 다스리는 총독의 자리가 위험하고 가이사 로마 법정에 보내려니 로마법을 어긴 정확한 죄목이 없고 너무나 고민하면서도 결국은 자기가 진실하게 나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로마정치인들의 부패 권력을 유지하기 원하고 다수의 소견에 따라서 인심얻기를 원하고 환심사기를 원해서 참다운 재판을 못해주는 베스도와 같은 유유부단한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은 진리가 뭔지 비진리가 뭔지 갈라내지도 못하는 이런 속성이 우리들 안에도 있습니다. 어떻게 바울을 처리해야 될것인지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는 중에 아그립바왕이 부인과 그가 총독된 것을 축하하러 왔습니다. 아그립바왕에게 이 이야기를 하니까 아그립바 왕은 재판에는 관심이 없고 바울에게 관심을 갖습니다. 아그립바왕은 그럼 누구인가? 이 사람이 왜 재판에는 관심이 없고 바울에게 관심이 있어서 이를 만나고자 하는가? 아그립바 할아버지 헤롯왕은 예수님이 탄생되어진다는 별의 이상을 보고 쫓아온 동방박사들의 말을 듣고 남자아이 2살이하로 다 죽이라고 명했던 자입니다. 아그립바왕의 아버지는 야고보를 죽이고 베드로를 투옥한 사람입니다. 아그립바왕의 삼촌은 세례요한의 목을 벤 사람입니다. 그런데 아그립바왕이 생각할때에 자기 할아버지도 비참하게 죽었고 자기 아버지도 벌레에게 물려서 너무나 비참하게 죽는 것을 봤습니다. 자기의 가문은 왜 그렇게 예수의 도하고 안맞는지 예수가 누구길래 우리 가문이 철처하게 원수삼아 죽이기로 결정했고 대적자가 되어있는데 예수를 증거하는 바울이 그렇게 핍박받고 환란을 받고 고난을 받아도 예수 전하는 것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궁금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베들레헴의 2살아래 사내아이를 다 죽이는 살상을 저질렀던 혈통, 야고보와 베드로를 투옥시켜서 사명을 발목 묶었던 혈통, 주님의 길을 까는 세례요한을 죽였던 혈통 이런 이 가문도 버리지 아니하시고 바울을 감옥에서 심문받게 하시면서도 복음이 증거되게 하시는 하나님. 구원에는 미치지 못할 그릇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절대 하나님을 믿지 않을것 같은 아그립바와 같은 사람을 붙여놓으시고 내가 감옥에 가는 한이 있더라도 그를 전도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그러니 전도의 대상은 차별이 없다는 것입니다. 절대로 예수믿을 가문이 아닌 아그립바의 가문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건져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그런데 이 사람들이 유대총독으로 있으면서 이 사람들의 손에서 제사장들이 임명이 되어지고 성전관리 책임자가 임명되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구보다 이 사람들이 예수를 잘믿어야 됩니다. 그런데 대대로 예수를 죽이고 예수 믿는 도를 대적하고 말살시키는 가문으로 쓰임받습니다. 이 사람은 우리와 상거가 먼 사람 같으나 우리의 중심을 들여다 봅시다. 주님께서 창조주이시면서도 피조물인 세례요한에게 무릎을 꿇으면서 구원의 길을 열어 놓으실때에 세상의 질서가운데 오셔서 질서를 통하여 구원을 이루시는 길표가 되어주시는 구원의 길에 세례요한의 그 의로움으로 ‘말려 가로되’말리는 자리에 들어갔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주님의 뜻을 내의로 막는 사건들이 헤롯이 되어서 예수님을 죽이고 예수님시대에 갔던 자들을 다 죽이는 자리에 들어갔던 헤롯의 가문이 내속에도 있다는 것을 아는 우리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내가 우리집안의 믿음의 푯대가 되어 가족의 구원을 이끌어가는 위치에 있습니까? 내가 기도하는 사람이고 내가 먼저 예수믿는 사람이라 나의 영향력을 받을수밖에 없는 자리에서 내가 제사장을 임명하고 성전을 관리할수있는 책임자를 뽑는 가문의 위치에서 교회의 직분자가 되어져 있습니까? 유대종교인들, 유대총독과 같은 위치와 자리에 있으면서도 성령 하나님을 섬겨야 될 사람이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고 자기 열심, 자기 목적 달성하기 원하여 예수를 죽이려고 하는 유대인들이나 오늘 예수님의 뜻을 이루는 모든 제자들을 다 죽이는 자리에 들어가는 자나 오늘 우리가 영으로 내 뜻과 맞지 아니하면 다 말살시키는 이것이 내안의 헤롯왕이라는 것을 알아 정체를 잡아내는 우리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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