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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 왕의 죽음과 야베스 거민들의 은혜 갚는 행동"(삼상31장 5월4일 주일저녁) 김영구 2014-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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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 왕의 죽음과 야베스 거민들의 은혜 갚는 행동

(삼상 31, 54일 주일 저녁 예배 말씀)

 

<요점정리>

-우리안의 사울이 죽어지길 원합니다.

-인생의 마지막이 아름답길 원합니다.

-“다 이루었다는 고백으로 인생을 마감하길 원합니다.

-승리만 했던 길보아 산에서 패하고, 자살을 선택하는 사울 왕

-나 혼자만이 아닌, 모두를 죽음으로 인도한 사울 왕

-자살은 회개의 기회조차 없습니다.

-자살은 명백한 지옥행입니다.

-야베스 거민처럼 은혜를 갚을 수 있는 자가 되길 원합니다.

 

 

<본문내용>

-사울과 그 세 아들과 병기 든 자와 그의 모든 사람이 다 그 날에 함께 죽었더라.(6)

나의 사울, 우리의 사울도 죽길 원합니다. 수 없이 많은 시기의 분노와 용서치 못해 죽이고 싶어 하는 내 안의 사울도 죽기를 원합니다. 사울의 인생 끝에는 이러한 죽음이 오게 되었습니다. 다윗이 다윗 되도록 하실려고 사울을 붙여 주셨는데, 내가 되면 내 주변의 사울은 끝이 나게 되어집니다. 죽지 못하기 때문에 끝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에게, 아말렉 전투에서 아말렉의 모든 것을 진멸하라고 하셨습니다. 아말렉은 에서의 후손입니다. 내안의 아담으로부터 내려오는 죄성들을 우리 또한 쳐서 죽이길 원합니다. 영적 길을 가는데 이 아말렉은 늘 방해를 하고, 하나님의 사람이 되지 못하도록 만듭니다. 사울에게는 진멸해야 될 아말렉 전투에서 아각과 양과 소를 남겨 두었고, 우리 안에도 자존심이라는 진멸하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이 자존심 때문에 우리는 살 소망이 없습니다. 이 자존심이 말씀을 못 듣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내안의 이념, 체념의 자존심의 정체를 보길 원합니다. 사울은 아말렉을 다 진멸치 못한 것처럼, 자기 죄를 보지 못하던 자였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내안의 자존심을 예수의 이름으로 쳐내길 원합니다. 사울의 마지막을 끝으로 사무엘상은 끝이 납니다. 할례 받지 못한 이방인들에게 수치를 보여주며 마지막을 맞이하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가 받은 사명을 다 행하고, “다 이루었다고백하는 자가 되길 원하며, 또한 나를 만들기 위해 수고한 이들을 향해 저들의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는 고백을 드리는 사울과, 스데반의 고백이 있기를 원합니다. 이러한 고백을 들으시고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양육해 가고 계십니다. 믿음으로 의인은 살 수 있는데, 믿음을 떠나 자꾸 돈과 명예를 쫓고, 찾는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사무엘을 통해 하나님의 통치가 최고임을 사울에게 알게 하셨으나, 끝없이 세상 가치관을 따르는 사울의 속성이 우리게도 있습니다. 죄를 보게되면, 우리는 후회하는 인생이 아니라 회개의 자리에서 새 생명으로 창조되어지길 원합니다. 왕을 달라는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 사울이 왕위에 오르자, 사울은 백성들이 나를 왕으로 세운 것으로 착각을 하며, 하나님 보다는 백성들의 마음을 얻는데 중점을 두었던 자였습니다. 그러던 사울이 오늘 본문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내안에 있는 내가라는 것이 악신임을 깨닫는 은혜가 있길 원합니다. 내안에 있기에, 아껴보는 아각과, 멸할 수 없는 살찐 소와 양으로만 보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으로써, 사울은 블레셋을 통해 죽게 되어집니다. 하나님과 함께해서 승리만을 했던 길보아산에서 악신의 부림을 받던 사울은 패전하며,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치리하시는 이스라엘 왕으로써, 이방인에게 죽을 수 없다며, 끝내 자살을 하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신앙생활에 무늬만 있었던 사울을 보게 됩니다. 본인이 악신의 부림을 받고, 사람을 죽이려는지도 몰랐던 사울은 체면 때문에 사람을 또 의식하게 되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되어집니다. 본인만 죽은 것이 아니라 요나단도 함께 죽게 욉니다. 요나단은 다윗 속에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했으나, 결국에는 혈연을 넘지 못했습니다. 다 잘되는 것 같았으나, 어느날 갑자기 모두가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나만 죽으면 모두를 살릴 수 있는데, 끝가지 죽지 않고, 회개하지 않았기에 모든이를 함께 죽음으로 밀어 붙이게 만드는 사울의 모습입니다. 자살로 심판을 받은 사울, 하나님이 기름부어 세웠지만, 끝까지 백성의 눈치를 보았던 사울은, 생명을 자신의 것으로 보고 자살을 선택하게 됩니다. 영적 수치심을 느꼈다면 회개했을텐데, 남의 시선을 바라 봤기에 사울은 자살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남을 죽인자는 회개의 기회가 있지만, 자살은 지옥행입니다. 우리 안의 체면과 자존심 때문에 죽고 싶어하는 자살의 영을 예수의 이름으로 끌어내길 소망합니다. 우리 모두의 죄의 소재는 회개할 일들입니다. 어떤 상황과 사건 모두는 회개할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내 죄를 알고 하나님께 회개 할 때, 하나님은 가장 기뻐하십니다. 믿는자에게는 위기가 없습니다. 이를 통해 새로운 기회가 주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회개 했을 때, 시글락에서 빼앗긴 모든 것을 다시금 되찾기 된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삼상30)

오늘 본문에서 사울의 시체는 성벽에 걸어져 죄에 대한 공의의 심판을 받게 하셨습니다.(10) 그러나, 세상 모두가 싫어하고, 배반하고, 하나님이 버린 사울이지만, 암몬의 침략에 당하던 야베스를 구해주었던 일을 통하여, 사랑과 은총을 갚을려고 사울과 그 아들들의 시체를 장사치러주고, 7일간 금식을 하는 야베스 거민들도 나타나게 됩니다.(11~13) 우리의 죽음에 울어줄 사람이 많기를 원합니다. 선한 행실과 도움으로 많은 이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길 원합니다. 시기, 질투, 불만만 없어도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집니다. 도와주는 손과 발을 통해, 우리주변에도 이러한 야베스의 거민들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최고의 복을 받은 사울이지만 자기의 이기적인 선택으로 자살로 마무리하게 되어집니다.

죄로 인해 수치와 두려움에 죽음을 선택한 사울보다는 회개하는 인생 되길 원합니다. 죽고 싶은 환경에서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붙잡길 소망합니다. 사명을 다 이루고 돌아가는 인생이 되길 원합니다. 내 뜻대로 생명을 멸하는 어리석은 자 되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내안에 사울이 죽어 열등의식, 시기, 질투, 죽도록 미워하는 이러한 것들이 예수의 피와 성령의 불로 소멸되어지길 소망합니다.

 

<말씀에 비추인 내 모습>

-사울이 죽으면 끝이 나야 하는데... 2의 사울, 3의 사울이 계속해서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라는 그릇에 언제쯤이면 생명수로 채워져서 내 뜻대로 건너지 못하는 세계에 흐름을 탈 수 있을는지....

 

<말씀으로 만들어 가실 우리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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