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수꾼의 사명 | 홍양학 | 2014-05-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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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33:1-7
기복에 젖은 사람들은 잘되고 형통하면 하나님께 큰 복을 받았고 아무리 믿음이 좋은겉 같에도 이 땅에서 고난을 받으면 하나님의 사랑을 못받은것입니다. 이것이 기복주의의 기준입니다. 누구에게나 칭찬받고 악에서 떠난자라고 하나님께도 인정받은 욥이 예기치 않게 쫄딱 망했습니다. 기복에 젖은 가치관으로 보면 하나님께 저주받은겁니다. 왜 저주받았느냐 죄를 지었으니 회개하고 돌아오라고... 욥은 끝까지 무죄를 선언하는 가운데 대항으로 속에 있는 악을 들어냅니다. 친구들은 변론하다가 할 말을 잃고 지쳐서 포기를 합니다. 이 상황에 엘리후가 혜성같이 등장합니다. " 나는 결코 사람의 낯을 보지 아니하며 사람에게 아첨하지 아니하나니 이는 아첨할 줄을 알지 못함이라 만일 그리하면 나를 지으신 자가 속히 나를 취하시리로다." " 내 말이 내 마음의 정직함을 나타내고 내 입술이 아는 바를 진실히 말하리라. 하나님의 신이 나를 지으셨고 전능자의 기운이 나를 살리시느니라." 하나님이 함께하는 "나 여호와가 가르쳐 가라사대" 의 선지자만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럼 파소꾼의 진정한 사명은 무었입니까? 사람이 왜 말을 합니까? 내 뜻이 상대방에게 전달이 되어지고 상대를 주관하며 나의 유익을 위하여 말을 합니다. 믿음의 사람의 말은 주체가 구원을 이루기 위함이요 예수를 증거하며 증인이 되기위함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이 이제는 말을할 때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여야 합니다. 그 입에 할 말을 주시고 지혜를 주셔서 상대방을 살리고 위로하며 구원의 손길이 되어져야 합니다. 우리가 무슨 말을 하든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말이요,책망까지도,훈계까지도 살리는 말이 되어져야합니다. 우리의 입의 말이 어떻게 하나님께로 온것임을 확정이 됩니까? 파수꾼의 자세는 어떻해야 합니까? 오늘 이것을 더듬어바야 합니다. 우리의 수 없는 말이 본성으로 말미암았는가... ? 내 뜻을 내 욕심을 위하여 열심히 말을 헀는가? 오늘 우리는 말씀을 통하여 점검받아야합니다. 갈리리 사역은 모든 병을 다 치료하고 귀신을 쫓아내며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열두광주리가 남는 축복으로 배부르게 합니다. 본성이 다룸을 받지 않은 가운데 그 위에 축복을 축사를 합니다. 넘치고 잘되고 형통하는 것이 평생소원이기에, 그러한 사역은 인사인해를 이룹니다. 그래서 주님앞에 나아와 장사하고 거래를 합니다. 제자의 길 사명자의 길은 그렇지 않습니다. 열심이 특심이 되어 금식하며 일천번제 드리면 다 잘 될줄 알고 따라 왔지만 되는 일이 없습니다. 따르다 보니 골고다요 십자가의 죽음뿐입니다. 내 뜻대로 안되고 막히는것 뿐입니다. 망할것 같습니다. 3일만 예수님과 같이 죽으면 됩니다. 죽고 나면 부활의 생명으로 거듭납니다. 세상을 밝고 있지만 영향 받지않는, 있어도 없어도 전혀 상관이 없는 눌리지도 않고 상함도 없는 세상도 감당치 못하는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죽으면 끝인줄 알았는데 죽으면 소망이 없을 줄 알았는데 부활의 영으로 새생명이 됩니다. 십자가에 내가 죄인인 줄을 알고 죽는 자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사명을 깨달게 됩니다. 우리는 사명에 따라 죽든지 살든지 합니다. 사명을 맡은 자는 보내신 자의 뜻대로 권면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이 말하게 하심따라 곱게 말을 해야 합니다. 사람에게 좋은 이미지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하여 사람을 의식하며 인정받으려고 하는 자는 고통밖에 없습니다. 사람의 귀를 즐겁게 하기위하여 내가 말을 하게 되면 나는 하나님 앞에서 불의한 자요. 사람을 살려내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기회를 주셨는데 우리는 당연히 내 뜻이 아닌 주님의 뜻인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야 합니다. 파수꾼이 피조물을 의식하고 피조물의 눈치를 보는것이 하나님을 모독하는것입니다. 에스겔의 메시지는 소망으로서 백성의 소원을 풀어주는 기쁨의 소식이 아니였습니다. 그의 메시지는 심판이요 침략이요 포로요 기근이요 망함이요 애곡과 애가로 가득차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에스겔을 죽입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스겔을 쓰시고 하나님이 말씀을 대언한것이니 백성들이 듣고 해야 될것은 강포를 패역을 우상 숭배를 버리고 회개하면 되는 것입니다. 자기 안에 불순물, 망할것은 보지못하고 자신들이 듣기원하는 즐겁게 하는 메시지를 전하는 사역자만을 원하는데 눈만 뜨면 치고 책망하고 권면하니 예배가 두렵고 말씀을 거부하며 내지 죽이기까지 합니다. 재앙과 심판의 메시지를 듣고 돌을 던지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받는 자들도 있습니다. 받는 자들은 산자요 생명의 사람들입니다. 그저 보시기에 좋았더라 빈 그릇이요 깨끗함으로 눈물과 감사로 하나님이 함께하는 자... 왜 칠수 밖에 없는 패역을 같고 있습니까? 왜 강단의 메시가 강할 수 밖에 없을가요? 교만으로 거만으로 패역이 아구까지 차서 스스로 정답을 가지고 정죄하며 내가 하나님이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 듣고 포로에서 귀환되고 회복되기를 원합니다. 받고 싶지않은 메시지이지만 받으면 삽니다. 하박국 선지자를 한번봅니다. 어떻게 저렇게 악한자를 그냥 내버려 둡니까? 어떻게 거짓선지자를 그냥 둡니까? 어떻게 패역한 인간들을 심파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어찌하여 어찌하여 하던 선지자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세사을 보는 눈이 달아지고 해석이 달라졌습니다. 패역할 지라도 상대방만 패역한것이 아니라 자신의 패역함도 보게 되어졌습니다. 예수를 딱 만나고 나니 다른 사람들이 다 나보다 나은것입니다. 자신이 더 패역한것입니다. 여호와로 말미암아 자기 죄를 보게 되어지고 구원의 세계가 깨지고 나니, 찌라도 전문가가 되어졌습니다. 어찌하여만 외치며 원망하던 하박국 선지자는 예수 한분 만으로 모든 것이 없을 지라도 기뻐하고 감사하고 즐거워하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말에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받은 것을 정확하게 전해야 합니다. 사람을 의식하면 사명을 감당하는 파수꾼으로서 자격이 안됩니다. 거짓증언 저도 모르면서 그저 들은 것으로 가르치는 선생이 되서는 안됩니다. 내가 말하는 것이 성령으로 말미암았는지 자기의 말인지 분별해야합니다. 성도는 또한 하나님께로 나온건지 자기 영광을 위한것인지 시험할 줄 알아야합니다. 하나님께로 온것이면 찌를 지라도 죽일 지라도 영접하고 순종하여 이루어야 합니다. 아니면 축사요 형통이요 열두광주리가 남는 축복이라도 거절할 줄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그래서 거짓교훈 분별하게 해달라고 기도 해야합니다. "내 영광을 구하지 않고 나는 나를 보내신이의 영광을 구하리라. 보내신 자의 뜻을 전하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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