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든 자기 영광의 낙성식과, 하나님이 주신 풀무 낙성식"(5월21일 수요일 새벽말씀) | 김영구 | 2014-05-2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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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자기영광의 낙성식과 하나님이 주신 풀무 낙성식” (단 3장 1절~18절, 5월 21일 수요일 새벽예배 말씀)
<요점정리> -삶의 가운데 본질적으로 자신을 섬기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 믿음의 현주소 -자신을 위하여 우상을 만드는 느부갓네살 왕 -낙성식을 통해 영광을 받길 원하는 타락한 교만과, 세상 모든 악기를 통해 나의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길 원하는 우리의 교만함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면 위협을 하게 되는 느부갓네살왕과 같은 속성들과는 무력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기도로 감당해야합니다. -사단은 언제나 우리의 틈을 보고 넘어지게 만듭니다. -우리는 내안에 올라오는 분냄과 싸워야합니다. -풀무 가운데 던져질찌라도,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과, 그리 아니하실찌라도 하나님만을 섬기겠다는 결단이 우리에게도 고백되어지길 소망합니다.
<본문내용> -우상과 하나님 앞에서 누구를 섬길것인가?를 고민하며, 갈등하는 것이 우리 신앙생활입니다. 꿈 해석을 통해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은 느부갓네살 왕의 행동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힘과 능력의 신앙 앞에서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인정하는 것이였습니다. 그러나 본질적으론 삶 가운데 자신을 섬기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오늘 3장에서 느부갓네살 왕은 자신을 위해 우상을 만들고, 모든 백성이 그 앞에서 우상을 섬기게 만드는 변질된 모습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론으로, 지식으로는 영의 세계를 알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은혜 가운데 임하여야, 진리의 성령님이 오셔야 변화 되는 줄 믿습니다. 오늘이라는 시간에 우리가 어떤 영의 쓰임을 받느냐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세상 제국의 제왕인 느부갓네살왕은 사단이 사용하기에 너무 좋은 조건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사단은 사람들을 유혹하고 미혹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가 섬기는 신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구약에 모세가 하나님 말씀 앞에서 지팡이를 던지는 사건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손에 잡고 있던 지팡이가 땅에 던지자, 뱀으로 변하였고, 하나님은 다시금 그 뱀의 머리가 아닌 꼬리를 잡으라고 명령하십니다. 자신이 섬기고, 의지하는 것이 하나님일줄 알았으나, 실제에 들어가서는 사단의 속성이 들어 있다는 것으로, 지팡이가 뱀으로 변하는 것을 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내안의 속성들 가운데, 내 본성은 뒤로가, 꼬리가 되고, 말씀이 머리가 되도록, 앞서 가도록 명하십니다. 우리 안에, 언약백성이라는 신령한 것으로 높아져 있는 것에서 내려와, 주의 말씀을 쫓아 살아가는 인생 되길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자기 만족을 누리고 살아가는 인생의 끝은 망할것이라는 것을 앞서 느부갓네살 왕의 꿈을 통해 보여주셨지만, 여전히 자기의 업적과 신상을 세워 자기에게 절하길 원하는 느부갓네살 왕의 열심과 특심을 우리는 보게 되어 집니다. 이는 우리가 사용하는 본성, 무저갱으로 버려질 심판받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내려놓지 못하는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나를 세워, 하나님처럼 높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하는 것으로, 내가 영광을 받으려 하는 것에서 죄는 시작이 됩니다. 본문처럼 세상의 모든 악기를 통해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고, 열방에 나타내기를 소망하는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7절) 마귀는 우리가 망할 기회를 주는데, 우리에게 더하여 주는 것으로 유혹을 합니다. 조금씩, 조금씩 예배를 멀리하게 하고 세상을 통해 인정받게 하고 자기 영광을 취하도록 도와주는 것을 통해 기념비와 금 신상을 세워 줌으로써, “네가 금 머리이다”고 인정해 주어, 하나님을 떠나도록 우리를 미혹시킵니다. 더하고 더하는 것으로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식어지게 만들고, 사모하는 마음, 간절한 기도가 사라지게 만듭니다. 세상 모든 금과 은으로 인생을 살아갈 지라도, 마지막에는 흙 한줌으로 끝날 수 밖에 없는 인생이 세상사 인생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살아가는 자에게는 한줌의 티끌밖에 안되는 우리를 회복시키고, 회복시키셔서 마지막에는 예수님이신 정금과 같은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십니다. 내 뜻대로 되어야하고, 살아야하는 느부갓네살왕은 우리 가정과 공동체 안에도 있습니다. 자기 뜻을 따르게 명령하기도 하고, 목숨을 위협하기도 합니다. 이런 느부갓네살 왕을 두고, 대항하는 방법은, 무력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기도로 감당하는 것입니다. 풀무에 던지다 할찌라도 믿음으로 감당하며, 주님 앞에 모든 것을 맡기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위협과 박해를 통해, 사단은 양면으로 우리를 공격합니다. 헌신과 예배하는 삶에서 떠나도록 미혹합니다. 우리의 틈을 보고, 양면으로 어떻게든지 넘어지게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왕이 만든 우상 앞에 절하지 않을 때, 풀무에 던져 넣겠다는 말이 들렸지만, 풀무에 넣을찌라도, 하나님만을 섬기겠다는 결단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결단을 통해, 풀무가운데서도 건져내실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리아니하실찌라도 “하나님만을 섬기겠습니다.”는 고백을 하는 하나님의 자존심을 세워드리는 인생이 되길 소망합니다.(18절) 이런 믿음을 굳건히 지키는 다니엘과 세 친구의 믿음의 고백과 결단이 우리에게도 필요합니다. 8절에 보면, 다니엘과 세 친구를 왕에게 고발하는 갈대아인들이 등장합니다. 갈대아인 입장에서는 포로의 신분으로 와서 꿈 하나 해석을 해주고, 나라의 수장이 되고 관직에 오른 다니엘과 세 친구들을 통해 시기와 질투가 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던중에, 이들을 곤경에 빠트릴 절호의 기회가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왕이 세운 우상에 절을 하지 않던 다니엘과 세 친구들을 갈대아인들이 왕 앞에 고발을 하게 됩니다. 우리 주변에도 이러한 갈대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참소자, 고발자, 체포자들이 있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잘 분별하길 원합니다. 이렇게 자신이 세운 우상 앞에 절하지 않는 자들을 향해 왕은 풀무에 넣을 것으로 위협을 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결단이 있었던 다니엘과 친구들은 싸우는 싸움을 하게 됩니다. 내안에서 올라오는 분냄과 우리도 싸워야합니다. 주변에서 참소하고 시기하는 것도 말씀대로 살고자 감당해야합니다. 순간순간 올라오는 것들을 잘 감당해야합니다. 우리의 인생가운데는 본문 2절처럼 “낙성 예식”을 받길 원합니다. 나의 본성인 신상 앞에 나를 높여주고, 인정해주는 낙성식을 받기 원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이 가야할 길은 따로 있습니다. 본문 16~18절을 보면, 우리인생에 필요한 아주 중요한 결단의 고백을 하게 됩니다. “ 이일에 대하여 왕게게 대답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내 믿음을 팔아버리지 않는 고백, 이런 결단의 고백이 우리에게도 있기를 소망합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하나님께서 지켜주실줄 믿었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리 아니하실찌라도 하나님만을 섬기겠다는 것입니다.” 환란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인생되길 원합니다. 풀무에서는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에서도 지키실 하나님을 믿으며, 그리아니하실찌라도 믿음을 지키는, 세상의 어떤 금신상과, 권력과 부와 명예 앞에서도 결단하는 인생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금신상 앞에 낙성식을 취하지 않고 풀무를 선택한 믿음의 결단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결단은 후손에게도 큰 소망의 문으로 남게 되어집니다.
<드리는 기도> -생명의 위협 앞에서도 하나님 앞에 절대적 신앙을 지킨 고백이 우리에게도 있기를 원합니다. 믿음으로 모든 것을 감당하고 이기는 것임을 잊지 않길 원합니다. 낙성식 받기를 좋아하는 나의 본성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주권 앞에 낙성식 보다 풀무와 같은 것도 감당하는 인생되길 원하며, 내가 절하고 있는 금신상은 무엇이고, 나를 핍박하는 것 때문에 타협하는 것은 무엇인지 살펴보고, 풀무 같은 환경 속에서도 그리 아니하실찌라도 믿음을 지키는 인생되길 소망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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