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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일 주일 예배 말씀 요약 김수강 2014-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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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생은 밤과 낮이 공존하듯이 옳고 그름이 섞여 있습니다. 다 옳을 수도 없고 다 그를 수도 없습니다. 아무리 믿음이 없다 해도 진리가 나올 때가 있고 믿음이 있는 줄 알았는데 형편없는 자리에서 주절 거리 때가 있습니다. 이렇게 공전과 자전 가운데 지구가 돌듯이 하나님께서는 내 안에 좋지 않은 행실을 보면서 교만을 깨뜨리시고 환경가운데 눌리고 침몰당할 수밖에 없는 고난인데 그 때마다 빛의 세계를 열어 주셔서 소망과 힘을 주시고 내 안에 선한 일을 보게 하십니다. 믿음이란 옳고 그른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드시는 과정이라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엘리후가 말을 합니다. "나를 잠간 용납하라 내가 네게 보이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을 위하여 오히려 할 말이 있음이라"(2) 엘리후가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을 대신해서 이야기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신해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듣는 자가 하나님의 말씀처럼 들을 때 유익이 있는 것이지 아무리 내가 하나님 앞에 진리의 영을 받아서 가르쳐 가라사대 한다고 할지라도 상대방이 돼지의 심령으로 진주를 짓밟으면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옳고 그른 것을 따지지 말고 참아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엘리후는 하나님의 편에 서서 하나님의 대변인처럼 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을 할 때 하나님의 대변인처럼 말을 할 때가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인간 스스로 하나님의 세계에 대해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한 시간 뒤에 무슨 일이 일어 날 것인가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나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 할 것인가를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내 인생을 내가 정하고 내가 가는 것 같지만 한치 앞도 모르는 것이 인생입니다. 파도가 언제 와서 덮칠지, 내 생명이 오늘로 끝이 날지, 몇 년이 더 유보가 될 것인지, 앞으로 나를 통하여 무슨 역사가 일어날 것인지,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세계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순간순간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서는 살수도 없고 갈 수도 없는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그런데 무슨 하나님의 편에 서서 하나님의 이야기를 한다고 어떻게 말 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먼데서 지식을 취하고 나를 지으신 자에게 의를 돌려 보내리라"(3) 내가 알고 있는 지식 내가 말하고 있는 말은 하나님께로 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왔기 때문에 하나님께 의를 돌려보낸다는 것입니다. 요약도 잘하고 욥이 말하는 문제에 대해 답도 정확하게 말하지만 엘리후가 옳은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른 것도 많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믿음으로 자부심을 가지고 뜻대로 살려고 발 버둥치면서 나오는 모든 입의 말과 행실이 옳은 것만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 앞에 잡히면 옳은 것도 되지만 내 의로 할 때는 하나님도 감당치 못하는 교만으로 하나님 자리에서 서 있는 나를 보는 우리들 되기를 원합니다.

"진실로 내 말이 거짓이 아니라 지식이 구비한 자가 너와 함께 있느니라"(4) 자신의 말은 거짓이 아니라고 합니다. 엘리후는 자신의 지식을 자랑합니다. 성경은 지식으로 알면 멸망의 길로 갑니다. 말씀은 영이시고 생명입니다. 지식은 세상을 구원하지 못합니다. 생명이 세상을 구원합니다. 생명이 생명을 낳는 것입니다. 고통을 겪고 있는 욥에게 지식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아무소리 하지 않고 함께 하는 것이 욥에게 위로와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생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욥이 당하는 고난을 알고 있기 때문에 함께 아파하며 울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말 한마디를 해도 상대방에게 힘이 되고 위로를 줄 수 있는 생명을 가진 자가 되어 살릴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삼년 반 동안 양육했지만 결국에는 예수님을 저주하고 팔아버리고 흩어지고 자신만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제자들까지고 예수님을 버리고 돌아가게 했던 베드로였지만 주님께서는 사랑의 빛으로 그를 바라볼 때에 그 사랑의 눈으로 녹아지는 베드로를 보게 됩니다.

욥에게 필요한 것은 옳고 그른 것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사랑으로 품어 주고 기다려 줄 수 있는 위로의 마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모두가 떠나가고 비방한다고 할지라도 잠잠히 기다려 주며 이해해 줄 수 있는 주님의 마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한 주간 나는 내 생각으로 옳고 그른 것을 가지고 상대방을 판단하는 자리에 있었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마음으로 상대방의 어려움을 함께 아파하며 이해하고 위로하는 자리에서 그 사람이 일어날 수 있게 기다리는 사람이 되었는가? 베드로를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듯이 세상의 모든 것을 주님의 마음으로 바라보는 믿음의 눈을 갖는 우리 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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