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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우려고... 홍양학 2014-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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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골로새교회에 주님의 영이 임하여서 회심을 하고 말씀가운데 거듭나고 구원의 세계를 걸어가는 그들을 생각만해도 기쁘고 눈물이 나고 감사가 되어서 기도가 되어지는 이 때에 바울의 처지는 감옥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이 큽니다.
부활의 생명이 그 안에 들어와서 거듭난 생명이 되어지면 이 땅의 것은 다 초월되어지며 정복하고 돌파하게 되어지는데 주님을 증거하는 일로 인하여 자기가 지금 감금되어서 자유함이 없는 이 고난가운데서도 죽어가는 영혼 건짐받아서 구원받은 고백 자가되어졌다는 이 하나만해도 감사 할 수 있는 이런 신앙의 고백이 있는 자가 된다는 것은 전능하신 주의 능력인 줄로 믿습니다.
지난주에는 BC와AD가 완전히 구분되어져야 됨음 나누었습니다. 예수믿기전과 예수믿은후 예수를 믿었다 할지라도 주님을 만나기 전과 주님을 만난 후의 우리의 인생은 달라져야 할 줄 믿습니다. 예수가 임하고 나니까 늘 감정의 소유거리 폭팔하기 직전이여서 무슨 말만하면 문제가 되어지고 역사가되어 졌던것이라면 이제는 우리안에 화목케하는 영이 들어왔기 때문에 우리가 어디를 가든지 화목케하는 막힌 담을 여는 그래서 요즘 철야예배도 주일 예배도 수요예배도 풀권세 맬권세 주시는 그러니 엄천난 천국의 열쇠 음부의 권세를 주시고 묶을 수 있는 능력의 말씀을 우리에게 약속하시는데 이 약속을 생명으로 취하는 자가 되어져서 삶속에서 이 약속이 그 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우리들이 인생가운데 체험하는 복된 믿음의 과정이 있기를 원합니다.
오늘 바울은 골로새교회에게 예수가 누구신가를 분명히 설명을 하십니다.
너희가 예수믿기전에는 이렇게 악한 행실에서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고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과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지많은 이제 예수님을 영접하고 지금의 때는 화목케하는 예수님이 너희 죄를 위하여 십자가의 사건 그 사랑이 너희에게 확증했으니깐 이제 너희가 믿음의 길 가면서 화목제물이 되기를 원하고 하나님께서 너희들에게 왜 이 복음을 접하게 하는가?  너희가 흠이 없고 티가 없이 완전하게 하나님 앞에 서기를 원하여서 이렇게 줬다는 것입니다. 그럼 오늘 이렇게 거룩하고 흠이 없고 책망할것이  없는 하나님 앞에 세우기를 원해서 부활의 영을 만났다면 인생의 목적이 우리 믿음의 길을 가면서 그리스도의 형상 거룩을 입는 목적이 됩니다. 우리는 여전히 잘먹고 잘사는게 목적이지만 다시 한번 예수는 누구신가를 양육을 해가는 과정 가운데서 너희를 흠이 없고 티가 없이 완전히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세우기를 원한다고 하였습니다. 오늘도 우리를 이렇게 말씀으로 양육하여 가는것은 주님 앞에 우리가 섰을 때  흠이 없고 티가 없는  책망할것이 없는 자로 온전케 세우실려고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로 옮기웠다는 겁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가 되어 악한 행실에서 떠나지 못한자가 되어서 여전히 감사해야 될 사람이 인생 목적의 항방을 모르기 때문에 갚을 길 밖에 없는 빚진자 입니다. 빚진자의 심정으로 사도바울은 주님을 만나고 난 이후에 자기는 종의 심정으로 일꾼이 되기를 원했는데 우리는 아직 주님을 진리적으로 못만났으니 자기가 받은 은혜에 대하여 감사치 못하고 사소한 일에도 걸리게 되어지고 삐지게 되어지는 황당한 사건이 우리의 심령을 뒤집고 있습니다. 21절 믿음에 거한다는 것은? 우리는 부딛히면서 내안에 것이 깨지고 부서지는데 독불 장군으로 혼자 신앙생활하고 터치받지 아니하고 인터넷 설교로 쉽게 가고자하는것이 악한자입니다. 그런데 믿음에 거한다는 것은 공동체를 통하여서 이제 서로 부딛히면서 연합하면서 동거하는것이 하나님의 아름다운것이라고 그랬는데 동거하면서 살다보니까 부딛히고 내안에 속성들이 아니들어 날것이 없이 들어나다 보니 이것이 함께 기도제목이 되어지고 이것이 함께 부서지면서 자기안에 정체를 보게 되어지고 이러면서 다듬어지는것이 공동체에 속해있어야할 이유인것입니다.
23절 터위에 굳게서서 ... 터위에 굳게 세우기 위하여 하나님이 경륜가운데 말씀을 이루는 세계를 열어 놓으시고 우리를 이끌어 갑니다.
그럼 그 터는 결혼이 될수도 있고 가정일수도 있고 공동체 일 수 있고 직장에 보낼수도 있고 사업장일 수도 있고 그 보냄을 받은 터위에 잘 묶여서 잘 양육받고 질서에 순종하고 잘 감당하고 가다가 보니까 들은바 복음의 소망이 흔들리지 아니하는 그 때 그때 마다 자기의 육성대로 살지 못하니깐 말씀 붙들고 그러면서 기도하면서 적용하면서 가다가 보니 자아가 꺽겨지고 교만이 꺽겨지고 모난 성품이 부드러워지는 역사가 일어나는 겁니다.
바울은 복음의 일꾼이 되었다고 합니다.
율법을 쫓아 갈 때는 자기는 흠과 티가 없는 줄 알았는데 이제 꼬끄라짐을 당하면서 자기 임의 대로 소견대로 살수 없는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가다 보니까 들어나는 것마다 자기안에 악한것이 들어나게 되어지면서 자기 육성은 구속함을 당하게 되어지고 자기는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서 복음의 일꾼이 되어지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복음의 일꾼은 어떻게 되어지는가 내가 깨달은 바를 내가 삶에서 간증하여 사람을 살려내는 일이 교회의 사명이요 기쁜 소식의 주인 공인 예수를 증거하며 나에게도 구원받은 이 복음이  내 인생에 가장 기쁜 소식으로 깨닫고 받아 들이고 전파하는 것이 복음의 일꾼입니다. 복음의 일꾼은 예수 믿기전과 예수믿은후의 삶이 완전히 바뀌어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복음의 일꾼이 될려면 인생의 목적을 행복에 두지말고 거룩케하며 형상을 이루는 것임을 알고 잘 죽고 잘감당하는 그래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육체에 채우는 자가 되는것입니다. 바울은 교회를 위하여 이제 하시고자 하시는 주님의 뜻이 남은 고난을 그 육체에 채우는 거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에게 고난을 육체에 채우는 것은 동역자들을 통하여 전하는 것은 그가 결박하여 죽임을 당하는 것이요 매를 맞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동역자들은 결코 그 길 가는 것을 말립니다. 사람의 말을 듣고 환경에 치우치는것이 아니라 아무리 막는 역사가 있다 할지라도 그 안에 계신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이제 그 길을 가다가 보니까  이방의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하다 보니까 배고프고 자지못하고 굶주리고 온갖 박해와 온갖 핍박과 그리고 지금도 로마 감옥에 있는 이런 신세가 되어져있는 이것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육체에 채우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 욕심 내 야망 때문에 고난을 당하는데  복음 때문에 내가 죽음을 고난을 껵을 수 있는거 이것이 최고의 축복의 인생을 산다는 것이 이게 비밀이라는 겁니다.
스스로 높은 자리에 두면 대접안하고 인정안하면 쉽게 서원하게 되어지고 삐지고 걸리게 되어지며 평안이 없어지고  시험들게 되어지는데 늘 종의 자리에 일꾼의 자리에 자기를 낮추면 구원의 여정에서 푯대가 되어지고 나도 살고 남도 살리며 구원을 이루는 자가 되어 화목케하며 생명의 역사를 이룰 줄 압니다. 하늘의 복을 받습니다.
교회의 일꾼은 결론에 말씀을 이루는 것입니다. 봉사를 하던 헌신을 하던 시중을 들던 핍박을 받던 고난가운데 있던 말씀을 이루라고 주신 겁니다. 직장의 삶이든 가정의 삶이든 공동체 생활이든 모든것이  내안에 말씀이 이루어지게 할려고 허락하신 것이며 경륜가운데 이루어갑니다. 하나님의 경륜을 깨달은 자는 그 어떤 환경이나 상황이나 고난속에서도 하나님의 허락하신 손길이요 뜻인 줄 알고 원망하며 어찌하여 따지는 것이 아니라 묵묵히 강당하는 그리하여 거룩을 입는 이것이 기아한 비밀 이라는 겁니다. 감옥에 갇다나도 이것이 나를 온전케 하는 손길이라 하나님의 통치가운데 창조의 사역을 지금 나를 향하여 이루어가신다는것에 눈이 열리고 귀가 열린다면 얼마든지 감사함으로 감당 할 수 있는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바울은 세례요한과 다릅니다. 세례요한은 제사장의 아들이요 선지자의 사명을 감당했고 마지막 제사장으로서 개혁을 해왔지만 성령의 능력을 입은 자요 사도바울은 성령으로 난자 예수의 영이 함께 한 자입니다. 그러니 세례요한은 감옥갇히게 되니 내가 주를 위해서 이렇게 일했는데 왜 감옥에 갇혀 있는 나를 구원해 주시지 아니하고 왜 나를 이렇게 감옥에 갇아 놓냐고 그러면서 실족케 하는 역사가 일어나지만  사도 바울은 감옥에 갇다나도 끊입없이 감사하고 끊임없이 복음의 서신을 쓰면서 사람을 살려내고 복음의 증거 되는곳마다 옥중에 있으면 서신으로하고 풀어 놓으면 직접가서 전하고 날마다 복음 증거하고 복음의 일꾼 된것에 대하여서 이렇게 감사할 수 있는 감옥도 정복되는 이것이 부활의 생명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통치사역에 들어가서  창조사역을 이루어간다는 경륜에 눈이 밝아진 사람이라는 겁니다. 말씀듣고 깨닫는 것이 경륜이요 모든것의 해석이 달라집니다. 죽을 병도 감사로 받아들이며 생명을 깨닫게 하는 창조사역임을 알고 기꺼이 받아들이고 기뻐하는 이것이 기이한 비밀입니다.  내가 인생을 살면서 누군가를 살려주는 이 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 있습니까? 이 복을 이루고자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우라는 겁니다.
만물에 충만한 그리스도가 풍성한 생명으로 채우시고 주관하면 우리는 다스리고 정복하게 될 줄 믿습니다. 
왜 우리를 먼저 부르시고 믿는 자가 되게 하셨을까요? 사람 살리고 세우라고 그리고 심령을 온전케하여 하나님께 붙여드리라고 부르셨고 믿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성공을 위한 사역도 아니요 자기를 높이는 사역도 아니고 자신의 영광을 위한 사역도 아닙니다.
부귀영화 권세 야망 이런 욕망을 쫓는 이런 헛된 우상 섬기는 것에서 벗어나서 흠이 없고 티가 없는 온전한 자로 주님 앞에 서기를 원하여 말씀으로 잘 양육받는 자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오늘도 그리스도께서 우리안에 사시고 일하시기를 원합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우기 위하여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 믿기 전과 믿은 후 만나기전과  만난 후 확실한 변화가 있는자가 되기을 원합니다. 하는 일이 섬김과 봉사가 중요한것이 아니라  그 일을 통하여 말씀을 이루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복음의 일꾼입니다.
우리도 이 바울의 영적 수준에 도달하도록 영적욕심을 내며 싸우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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