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된 속임수와 노략을 주의 | 최요한 | 2014-10-05 | |||
|
|||||
출애굽기를 통한 구원의 여정을 더듬어 보게 되면 애굽에서 좋은 땅이신 그리스도는 그들에게 어떠한 그리스도로 역사를 하였는가? 유월절 어린양으로 역사를 하였습니다. 사망을 넘을수 있는 유월 시킬수 있는 어린양으로 ,그 어린양을 잡아서 그 고기를 먹고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른 집은 다 사망이 넘어 갔습니다. 그래서 구원을 받은 역사가 일어 났습니다. 그들이 애굽에 속하여 있는 모든 것들을 풀고 탈출할 수 있는 힘을 누군가 주셨다면 그리스도께서 주셨습니다. 그 힘을 공급 받고 구원의 여정에 올랐습니다. 애굽에 있던 세상에 있던 이제 우리들을 좋은 땅이신 그리스도께서 날 위해 죽으시고 구속해 주신 증표로 사망에 속한 자에 두지 아니하고 이제 좋은 땅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하시고자 구원의 여정에 우리를 인도하셨기 때문에 오늘 이 예배 자리에 우리가 있게 되는 것이다. 그 다음 광야의 생활을 통하여서 가나안 땅으로 약속의 땅으로 사람들을 믿음의 여정으로 이끌어 가셨는데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만나로 양육을 하셨습니다. 여전히 말씀으로 양육을 받으면서 말씀의 뜻이 무엇인지 몰라서 날마다 말씀을 먹으면서 해석이 안되는 것이였다. 말씀을 생명으로 취하지 못하는 것이다. 늘 말씀을 들어도 눈이 열리지 않고 귀가 듣지 못하니 이것이 무엇인가 할 수 밖에 없는 만나였다. 하나님께서 만나로 양육을 하면서 지도자 모세로 통하여서 계시를 보여 주신 것을 성막을 짓는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성전을 짓기를 원하십니다. 성막을 짓는 가운데 견고한 기초가 없으니 늘 은혜를 받고 죄 짓고 회계하는 믿음의 뿌리가 내리지 못해서 방황하는 생활을 하는 것이다. 환경에 막히는 이것의 해석이 아니되여 원망하는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은 만나를 먹을때 이러한 영적의 수준 이였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아름다운 소산을 먹는데 조건이 있습니다. 일곱 족속으로 예표된 죄의 속성을 정복하고 물리쳐야 되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좋은 땅은 오직 예수그리스도 한분 밖에 없으시다. 좋은 땅은 그리스도의 그릇이 되시기로 원하여서 우리를 약속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 땅으로 이끌어 가시는 것이다. 가나안 땅은 형제의 허물을 들어내고 아비의 허물을 들어내고 형제의 종이 되는 저주를 받은 것이 가나안 속성입니다. 우리의 심중의 속성을 들어다보면 가나안 일곱 족속으로 왕노릇을 하는데 이기적이고 자기 밖에 모르는데 것, 사람은 온유하고 이쁘지고 착한 외모를 가졌기에 우리는 중심을 보아야 되는데 것 사람을 보니 속습니다. 자기 입맛에 맞는것 자기 원하는 것만 택하는것 외모만 좋아하고 음란을 좋아하니 스스로 속는 것이다.결국 자신의 죄의 올무에 빠진 것이다. 좋은 땅을 누리기 위하여서 끓임없이 말씀으로 양육해 가고 있는데 우선 좋은 땅이 되려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알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는 것이다.그리하면 우리안에 성전이 지어서 그리스도 예수를 나타나는 것이다. 그럼 우리 목적은 무엇인가 ? 잘먹고 잘 사는 것 부자 청년 처럼 되고 땅 사고 땅 팔고 집 사고 집을 파는 것이다. 항상 우리의 소원과 하나님의 소원이 늘 갈등 안에서 충돌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하나님은 날마다 말씀으로 이것이 옳은 것이다 축복이다는 것을 말씀으로 길표를 보여 주십니다. 일곱 속성은 악한 주관자 정사와 권세되고 세상 임금이며 세상 주관자이다.세상을 내 마음데로 주관을 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기에 일곱 족속으로 예표된데서 좋은 땅이 되려면 모든 죄를 대적하고 정복을 하는 과정에 주님은 말씀의 노끈과 책찍으로 찾아오시는 것이다. 노끈는 갈대로 만든것이다. 그것이 인생 가운데 인생 채찍, 인생 사람의 막대기로 엎으시는 것이다. 골로새 성도들은 좋은 땅이신 그리스도를 부활의 생명으로 받았습니다.그렇지만 속임을 당하고 노략을 당하는 것은 영적으로 어린아이와 같은 수준이기에 믿는 자를 속이는데 있어서는 진리와 비슷하는데서 나오는 것이다. 아담이 하와에 속아서 선악과를 먹게 된것은 아무리 보아도 진리 되여 보았고 탐스럽기에 속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의 부활의 생명을 말씀으로 받았다면 이제 내안에서 성전이 지어지고 안식 하실수 있는 생명의 주 ,생명의 성령을 만났다면 우리에게 명하시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그 안에서 행하라'는 말씀입니다. 그 안에서 행하라는 말을 다섯번이나 언급 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말하고 성령의 통치를 받아라고 말한다. 이제는 인생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인생의 자랑을 하지 말고 생명의 성령의 법이 나의 심중에 말씀으로 임하셔서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성령에 순종을 하고 성령으로 일곱 족성을 정복하며 하나님의 대적자와 싸워서 구원의 여정을 아름답운 소산이 나는 약속의 땅이 되라고 믿음의 길을 가라고 명령을 하셨습니다. 성령께서 이끄는 진리로 가지 아니하고 진리와 비슷하는 것을 따르는 것이다.오직 성령의 법이 심중에 와야 유사 그리스도인을 분별할수 있는 것이다. 유사 그리스도인은 외모로 보면 믿음이 있는 것 같다,그의 헌신과 그의 기도 ,그의 말 잘하는 것 다 믿음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여기에 내가 생명의 법이 없기 때문에 속고 넘어가는 것이다. 유사 그리스도인은 율례와 규례 실행에 속한 것이 성령의 가르침과 비슷하여 속아서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유사그리스도인은 나는 십일조를 드렸다,예배를 잘드렸으니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라고 이렇게 자신이 속을 수 밖에 없습니다. 성경은 도덕과 윤리와 철학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구원으로 이끄는 말씀입니다. 사도바울은 우리에게 노략을 당하지 말라고 합니다. 노략은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에서 떨어지게 하는 것이다. 물질로 인해 어려움을 당하고 전통 율례와 규례로 노략당하여 그리스도에서 떨어지게 하는 속임 수에서 깨여있어야 한다. 아버지여 나의 심중에 생명이신 성령의 법이 있기를 원하며 참된 지혜로 분별함으로 유사 그리스도인 내 심중의 속성에서 구원을 이루기를 원합니다.. |
댓글 0